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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아인슈타인 프로젝트 독자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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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아인슈타인 프로젝트 독자투고

멘토 이재린


“이재린씨 인생의 멘토는 누구인가요?”

한수원 아인슈타인 프로젝트 멘토링 활동 면접에서 내게 주어진 예상치 못한 첫 질문이었다. ‘봉사활동’이란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멘토’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멘토링 합격 소식에 기뻐함과 동시에, 멘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모습의 멘토가 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자이자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기도 했지만, 바다를 곁에 둔 울진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

    

  엄격한 절차를 거쳐 멘토로 뽑힌 자부심이 있는 만큼, 주어진 귀중한 한 달동안 멘티와 멘토 양쪽 모두의 최대 발전을 이끌어내도록 꽉 채워나가고 싶었다. 단순하게 아이들에게 지식을 쏟아주기 보다는, 아이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해주면서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싶었다. 대학교 내 교육캠프 봉사활동을 가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틈만 나면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했다는 것이었다. 그 때에는 봉사기간이 워낙 짧았고, 배정된 학생 수도 많았기 때문에 해주고 싶은 만큼 아이들과 소통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달 동안 아이들 곁에 머무를 수 있으므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선생님을 믿고 열심히 따라와주는 아이들 덕분에 개인적인 바람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홈스쿨링, 학교 멘토링 매 수업 시간마다 나는 행복했다. 아이들은 예쁜 두 눈을 나와 맞추며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주었고, 한 마디 불평 없이 숙제와 복습을 해오는 열의를 보였다. 사춘기 시절 예민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탈 나이인데도, 영어를 재미있게 가르쳐보려는 나의 욕심에 부응해 열심히 임해주었다. 연극을 통해서 미국드라마를 재현해보고, 앞에 나가서 영어노래를 같이 불러보자는 제안에 머뭇대다가도 이내 웃으며 동참해주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이들이 다함께 꺄르르 웃으며, 영어 표현을 같이 외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기분이 좋다. ‘재미있다. 내가 생각했었던 어려운 영어가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아이의 피드백은 나를 춤추게 했고, ‘얘들아. 선생님은 너네가 너무 좋아.’ 라는 말에 ‘저희도요.’ 라고 대답하는 어린 천사들 때문에 매일 매일이 행복했다.

   

  홈스쿨링이 없어서 무료할 수도 있었던 주말에는 한수원 대외협력팀의 배려로 인해 아름다운 울진 일대를 관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20여년 동안 서울 토박이로만 살던 나에게 역동적으로 밀려들어와서 아름답게 부서지는 울진 바다, 밤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들, 푸르른 녹음과 맑은 공기는 낭만 그 자체였다. 또한 함께 하는 멘토들 전원이 활동적이고 유쾌해서 자주 모여 어울려 놀다보니 정으로 똘 똘 뭉친 한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서울생활을 그리워할 찰나가 없이 시나브로 울진은 내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작은 노력과 활동이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고, 그로부터 엄청난 보람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봉사활동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이것이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전, 정말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방학에 멘토링 활동을 지원한 이유였다. 또한 한수원 아인슈타인 프로젝트는 단기의 이벤트성이 아닌,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기에 충분한 장기간 소수정예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하고 싶었다. 경제 성장의 뿌리가 되어줄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는 한수원의 장기적인 안목 하에서, 한수원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신뢰와 학교 측의 지원이 멘토링 활동의 탄탄한 기반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렇게 따뜻한 진심으로 채워진 보람찬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음에는 항상 멘토들을 지원해주고 챙겨주는 한수원 직원분들과, 선생님을 믿고 존중해주시는 부모님들, 따뜻하게 격려해주시는 울진 시민분들의 도움이 컸다.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얻은 또 하나의 큰 수확은 ‘전기는 그냥 벽에서 무한정으로 흘러나오는 에너지’라는 나의 생각을 통째로 바꾸고 반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을 거쳐서 전기가 생산되고, 한 여름철 가장 더운 시각에 에어컨을 끄고 근무하신다는 한수원 직원분들의 말씀을 듣고 나니 계획된 절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생활하는 멘토들과  ‘안 쓰는 전기기구의 콘센트는 뽑아 놓고, 불은 꼭 끄고 다니자’는 규칙을 만들어서 지키려고 다함께 노력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펑 펑 전기를 썼었는데, 전기가 소중하고 고마운 에너지이며 나부터가 앞장서서 계획된 절전과 절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처음에 한수원 아인슈타인 프로젝트 멘토링 활동을 접했을 때 막연한 괴리감과 위화감이 든 것이 사실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꺼려지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사례가 아직도 발생하고 있는 만큼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울진에서 한달동안 생활하면서 한수원과 지역 주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런 생각들이 섣부른 편견과 오해로 인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원자력 발전소 견학을 갔을 때 원자력 발전의 원리와 안정성에 대해서 배우니 꼭 필요한 친환경 에너지임을 실감했다. 비행기가 전력질주해서 부딪혀도 흠칫 하나 나지 않는 터번과 원자로의 내구성과 견고함은 매우 인상적이면서 나의 걱정들을 싹 날려주었다.

   

  지금도 ‘조금만 더 시간을 준다면.. 더 많은 내용을 더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텐데, 아이들과 더 깊게 소통할 수 있을텐데’ 등등의 끝없는 아쉬움과 슬픔이 밀려온다. 설 연휴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마음은 계속해서 울진으로 향했던 것처럼, 울진을 떠난다해도 진한 여운과 그리움은 한동안 울진에 머물러있을 것 같다.

    

  그리울 것 같다. 아이들 하나 하나, 아이들과 함께 수업한 날들, 함께 했던 교실의 온기, 이 곳 울진 모두. 도움을 주려고 왔었는데, 도리어 아이들과 함께 하며 행복과 보람의 선물을 한가득 받았다. 눈시울을 붉히며 내년에 꼭 다시 오라는 아이들의 말에 확실히 약속해 줄 수는 없었지만, 아인슈타인 프로젝트가 계속되는 한 한수원과 울진이 함께 이루어내는 나눔과 채움의 작은 기적은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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